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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훤과 신검, 신검을 위한 변호(?)

요즘 글감이 몇 가지 있는데, 일이 바빠져서 그런지 시간이 없어서 글을 못쓰고 있다. 블로그만 바라보고 사는게 아니다 보니 할 일이 생각보다 많고 보고 싶은 사람도 많은데 무엇하나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해서 답답하기만 하다. (이러다가 사람들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일을 하면서 케이블방송의 수많은 재방송들 가운데 '태조왕건'이라는 것을 즐겨 보게 되었다. 자칭 드라마왕국 MBC의 '주몽'같은 3류 판타지 무협(?)과는 비유되게 예전부터 KBS의 사극은 비교적 실제 역사에 가깝게 묘사되어 제법 쏠쏠한 재미를 선사했었기에 KBS의 사극은 실제 역사에 근거한 약간의 상상의 나래를 제공한다. 그 상상의 나래 중 하나가 최근 CNTV에서 방영된 후백제 견훤의 장남 견훤의 반란 부분에 대한 아래의 끄적임이다.

우리는 대부분의 역사책에서 후백제의 멸망을 견훤의 장남 신검이 권력욕에 눈이 멀어 아버지인 견훤을 유폐시키고 견훤의 애첩의 장남인 금강을 살해(극 중에서는 신라 3최 중 하나인 최승우까지 죽이는 것으로 나오지만, 최승우의 생몰연대는 뚜렷한 기록이 안나와 있다.)하고 왕위를 찬탈하였다가 고려에 귀수한 견훤과 왕건의 공격을 받아 멸망한 것으로 되어 있다.

단순히 이런 짧은 교과서적인 표현만으로는 신검이라는 한 인간의 번뇌에 대해서 전혀 생각할 여유를 제공하지 않는다. 신검이 권력욕으로 천륜을 저버리고 아버지를 폐위시키고 형제를 주살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이승만이 평생에 걸친 항일독립활동보다 제주4.3사태와 사사오입개헌, 3.15부정선거만을 주로 기억한 교과서와 몇몇 좌파미디어들의 선전/선동에 휩쓸려 그의 평생에 걸친 삶을 '전제군주적 권위적 지도자'라는 짧은 단어로 대변해 버리는 것과 다름 없다.[각주:1] 이승만의 사례는 단지 대표적인 사례일 뿐, 이런 예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수없이 볼 수 있다.


후백제의 짧은 역사에서 가장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견훤의 처첩 간의 갈등이다. 호족들을 포섭한 권력 안정이라는 미명 하에 29명의 처첩을 거느린 왕건만큼은 아니었지만, 견훤 또한 많은 처첩을 거느린 채 10여명의 아들을 낳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도 본처의 소생인 맏아들 신검과 2,3남 양검/용검 3형제와 애첩의 소생 4남 금강의 대립은 후백제 멸망의 결정적 원인이 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신검이 후대 사가(史家)들에 의해서 지나치게 악의적으료 묘사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는 신검의 왕위찬탈 과정이 결코 무차별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반적인 고정관념에서 한 걸음 물러서서 신검의 쿠데타에 대해서 조망하면서 그의 정치적 행보에 대한 약간의 변호를 하고 싶어졌다. 왜냐하면 그가 우리의 고정관념만큼 악당이 아닐 것이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아래는 내가 제기하는 신검의 쿠데타 행위에 대한 나름의 변호다.


먼저 신검의 쿠데타 시기를 문제로 꼽고 싶다. 신검이 최종적으로 쿠데타를 결정한 시기는 본처의 3형제가 서로 지방으로 임지를 부여 받고 뿔뿔이 흩어지도록 견훤으로부터 명령을 받았고, 금강과 자신의 외삼촌인 親금강 세력인 박영규가 군권을 독식하며 금강의 후계체제가 명백해진 시기다. 지금의 김정일 전제왕조나 공산중국의 권력체제를 보더라도 역대 독재자들이 최후까지 놓치지 않으려 하는 최종적 권력이 바로 군권(軍權)이다. 민주적이지 않은 군왕적 통치체제에서 군권의 상실은 권력의 최종적 상실을 의미하며 군권을 잃은 정치집단이 정계 주류로 진출한다는 것은 비민주적 통치체제 하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더구나 처첩 간의 첨예한 갈등으로 '왕자의 난'[각주:2]이 예고된 후백제의 견훤 사후(死後)의 정국에서 신검 3형제와 금강 세력의 갈등은 필연이며 그 승패에 따라 대규모 피의 폭풍이 벌어질 것은 지극히 예정된 수순이나 다름 없었다. 당장 내일의 일을 알 수 없는 70세의 견훤(당시 평균연령을 감안하면 견훤과 그의 부친인 아자개는 도인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다.)이 금강에게 대권을 넘겨줄 경우 후궁과 투기를 하는 본처 3형제의 생사는 불을 보듯 뻔한데, 살아남을 방법을 강구하지 않는 것은 의로움이 아닌 어리석음일 것이다.


금강의 권력욕에 대해서도 반드시 지적할 필요가 있다. 본처의 3형제는 금강의 손위 이복형님들이다. 위에 형님을 3명이나 두고서 후궁의 장자로서 적통이라할 수도 없는 금강이 왕의 총애를 등에 업고 권력층 내부에 뚜렷한 지지기반도 가지지 못한 채, 몇몇의 지지 세력만으로 기꺼이 3명의 형님들을 제치고 대권을 잡으려 했다는 것에서 견훤이 총명하다고 보았다는 금강은 아마도 후대 사가들이 후백제의 역사적 가치를 낮추기 위해서 왜곡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본처의 소생으로 권력 승계의 적통인 신검이 권력층 내부에 두터운 지지 기반을 가지고 있음을 모를 리 없음에도 국왕 견훤의 총애만 믿고 그 많은 권력층을 적성 세력으로 돌린 금강이 정말 사가들의 평가처럼 총명하고 용맹하다고 할 수 있을까 회의가 든다.

또한 후궁의 소생이 적통이 될 수 없는 신라 내물왕 이후 계속 이어져온 고대왕국의 가장 기본적인 틀(장자상속제)을 무시하려 한 금강의 무리한 권력욕도 후백제 멸망에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신검의 권력욕보다 오히려 금강의 '순리를 벗어난 욕망'이 자신을 파멸로 이끌고 후백제의 근간을 흔들었다고 보는 것이 훨씬 더 옳바른 상황판단일 것이다.


신검의 쿠데타 과정과 사후처리에서도 신검의 신중함과 어느 정도의 사리분별이 잘 드러난다. 쿠데타 과정에서 신검이 공식적으로 살해한 주요인사들은 공식적으로는 금강 뿐이다. (TV드라마에서는 '파진찬' 최승우를 자살케 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 최승우는 생몰연도가 불명확한 인물이다.) 쿠데타에 성공하고서도 금강의 모친과 금강의 편에 섰던 매부 박영규 등을 죽이지 않고 목숨을 보전케 하는 도량을 보인다. 쿠데타 이후에도 부왕(父王)을 시해하기보다 큰 절에 유폐하는 온건한 방법을 택한다. 유폐된 이후에도 측근을 통해서 끊임없이 부왕을 설득하여 쿠데타의 불가피성을 설득하려 노력한다. (물론 씨알도 먹히지 않지만.) 신검의 대왕 즉위는 견훤의 고려 귀순 이후 국왕부재의 권력 공백 속에서 이루어지는 점도 신검이 최후까지 최소한의 자식으로서의 도리와 민중에 대한 태자로서의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려 했음을 엿볼 수 있다.

삼국유사나 고려사/고려사절요 등에 묘사되어 있을 신검에 대한 묘사는 지극히 부정적 견해를 가지고서 접근하여 악의적으로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고려 태조 왕건은 훈요십조에서 공식 유훈으로서 후백제 지역(현재의 전라도 지역)을 '풍수지리적으로 반굴의 상'이라고 하여 인재를 등용하지 말 것을 남기는 엽기를 부리기도 하였다. 자식이 부모를 권좌에서 내쫓았다는 명백한 사실 앞에 신검의 행위는 당대의 사가들에게서 결코 합리적인 평가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현대에 와서도 쿠데타라고 하는 정치행위 자체의 불법성으로 인해서 신검의 악마적 이미지는 그대로 굳혀져 버렸을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한국은 수많은 제3세계 군부 쿠데타 경험 국가들처럼 군부의 힘을 빌린 집단의 쿠데타를 경험한 국가가 아닌가. 그와 유사한 정치행태를 보인 신검에 대한 후대인들의 평가도 우호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오히려 무려 넷째 형제이면서도 장자상속이 보편화된 당시에 대권을 이어받으려고 과욕을 부린 금강에 대한 비판이 이토록 부재한가 하는 점이 더 의아스럽다.


Hedge™, Against All Odds..
  1. 특히 이와 같은 현상은 한국 근현대사를 장식한 여러 인물들(무장 테러리스트 조직의 대표로서 활동했던 김구, 군부독재와 근대화라는 이중성을 품은 박정희, 남로당 계열의 여운형/박헌영, 권력안정을 위해 전두환을 내친 노태우, 아들을 내친 김영삼, 정계은퇴라는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린 김대중 등 수도 없이 많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러한 기존 정치권 인사들에 대한 공방이 자신의 정치적 행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대중적 인기와 영합한 무조건적 찬양과 무조건적 자아비판 강요가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다. [본문으로]
  2. 대표적으로 조선조 태종 이방원이 친형인 정종 집권기에 저지른 참살행위가 있다. 왕자의 난에 대해서는 비단 아시아 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지역에서 곧잘 볼 수 있는 '일부다처제'와 '장자상속제'가 공존하는 국가에서 아주 흔한 정치행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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