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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tumayo - African Odyss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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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에게는 '아주 더러운 기질'이 하나 있다. 그것은 나 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족(Human Race? Mankind? 무엇이든 상관 없다.) 전체에 적용되는 사례이다. 그 가치는 지극히 상대적이고 주관적이어서 가치 기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그 치졸한 기질은 힘들고 어려울 때만 '(초)자연'에 가까워지려 한다는 것이다. 존재하지도 않는 신의 존재를 창조해 내고 그런 신의 존재를 숭배하며 인간이 창조해낸 신의 율법을 목숨처럼 따르기도 한다. 모든 종교의 태동이 바로 그와 같지 않았던가. 심신이 지칠 때 나무를 찾고 물을 찾고 숲을 찾고 강과 바다를 찾는다. 인간에 내재된 자연으로의 귀소본능이 그와 같은 현상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인간 모두에게는 분명 책임질 수 없는 현실을 만들어 놓고서 그 뒷처리를 '나 아닌 다른 누군가/무엇인가'에게 내맡기고 의지하고픈 비열함이 내재되어 있다.


Putumayo World Music社의 음반들과 (초)자연을 향한 인간의 귀소본능을 엮어내려는 전문 컬럼니스트들 같은 무리한 시도를 할 생각도 없는데다가 난 컬럼니스트도 아니며 그런 현학적 시도를 지적충만인 양 착각하는 몇몇 컬럼니스트들의 나르시즘은 나에게 있어 경멸과 조롱의 대상이다. 하지만 내가 Putumayo의 음반을 손에 쥐었을 때, 최근 부쩍 힘에 부치기 시작한 나의 현실세계 속의 삶에서 무언가 자연에 가까운 쉼터를 찾고 싶었던 기분이 들었다는 것에 대해서 부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푸투마요의 음반들은 Peter Gabriel의 Real World Records社의 음반들처럼 상당히 세련된 Traditional Pop스타일의 음악을 구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Arion Music社의 음반을 다시 사려고 해도 사기가 힘들다.

최근 들어 부쩍 길을 떠나고 싶어졌고 사람이 더욱 절실히 만나고 싶어졌다. 그럴 때마다 내가 생각하는 모든 사고의 최종 결론에는 '남자로 태어난 것이 원죄'라는 다소 허무맹랑하지만 가장 크리티컬한 결론으로 치닫는다. 도대체 어디가 남성상위의 사회란 말인가? 이 비운에 휩싸인 수컷들에게 약한 모습은 죽음보다 더한 치욕이며 무능함은 살아갈 가치조차 없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노예로서 존재할 이유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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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itional Healers, Zimbabwe Ruin. Photo : Peter Ptschelinzew]

Hedge™, Against All Od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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