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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일 바쿠닌(Mikhail Aleksandrovich Bakunin)

미하일 바쿠닌(Mikhail Aleksandrovich Bakunin, 1814~1876, 러시아)

러시아의 혁명가이자 급진적인 무정부주의자.
부유한 귀족 출신으로 헤겔학파에 매료되어 독일철학을 연구하다가 점차 혁명적인 범(犯)슬라브주의와 무정부주의로 기울어졌다. 1848년 프라하의 봉기, 1849년 드레스덴의 봉기, 1863년 폴란드의 무장봉기에 참가했으며, 만년에는 스위스로 이주하여 '제1인터내셔널(국제노동자협회)'에서 마르크스와 격렬하게 대립하였다. 그의 급진적인 무정부주의는 스페인, 이탈리아, 러시아의 혁명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신과 국가> (1871), <국가와 무정부>(1873)


"죽음만은 이기지 못한 혁명가"

바쿠닌은 러시아의 유서 깊은 귀족가문 출신으로 젊은 시절 왕실 포병부대 장교로 복역했다. 그러나 그 후 바쿠닌은 40년 동안 급진적인 무정부주의자로 활동했다. 그는 종횡무진으로 세계 여러 나라를 횡당했으며, 여러 번 사형선고를 받았고 또한 수년 동안 감금되기도 했다.
세계적인 혁명가였던 바쿠닌은 여러 나라에서 혁명이 봉기되도록 힘을 썼다. 당시 그가 만든 무력단체 '행동선전기관'은 전투시 폭약을 사용했는데 이는 유럽 전 지역의 군주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수염을 기르고 정열적인 바쿠닌에게 차별 또는 예외란 없었다. 다른 무정부주의자들에게 들려주는 그의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돌 하나 남지 않을 때까지 모든 것이 파괴되어야 한다. 모든 국가와 교회, 종교, 사법권, 법, 교육 그리고 사회적, 경제적 체계가 다 부서질 때까지."

이밖에도, 한때 수십만명에 이르렀던 추종자들에게 '백지전략(Tabula Rasa)'에서 즐거움을 찾게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파괴의 즐거움은 곧 성취의 즐거움이다."

바쿠닌은 19세기 사회주의자 그리고 공산주의자를 못마당하게 여겼다. 바쿠닌의 생각에 다르면 그들은 너무 국가와 관계가 깊었고, 또한 관료적이기 때문이었다.
이 빈곤하고 감성적인 국제 혁명가는 삶의 마지막을 스위스에서 보냈으며 그 곳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불행하게도 방광과 신장에 통증을 만들어준 전립선 확장증은 정열적인 혁명가였던 그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결국 요독증은 바쿠닌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나에게 더 이상 필요한 것은 없어."

러시아어로 그는 속삭였다. 그리고 지상에서의 마지막 말을 남겼다.

"난 내 노래를 불렀을 뿐이야."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바쿠닌의 비석은 여전히 스위스 베른의 브렘가르텐 묘지에 남아 있다.

- 한스 할터(Hans Halter), 유언(Letzte Worte), 말글빛냄 (2006)


그냥 일을 시작하기 전에 가벼운 마음으로 읽던 책에서 몇몇 괜찮은 말(?)을 남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블로그에 하나씩 끄적여 보려고 했는데 이제야 첫 글을 끄적여 본다.


Hedge™, Against All Od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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