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북아일랜드와 영국에 불안 요소로 작용하던 아일랜드 공화국군(Irish Republican Army, 사실상 테러조직이다.)이 (강요된)자발적 무장해제를 영국시간 28일에 선언했다. 9.11테러 이후 변화하는 국제 사회 속에서 테러리즘에 기반할 수 밖에 없는 무장 활동이 현실적으로 한계에 이르렀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IRA의 무장 해제 선언은 IRA의 해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IRA의 행위가 사빠띠스따 해방군과 유사한 경우처럼 무장 투쟁에서 정치 투쟁으로 변화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사빠띠스따 해방군은 최근 멕시코 정부의 마약밀거래 혐의에 대해서 도덕성에 흠집을 내려는 모략이라며 반발하며 무장 투쟁을 할 수도 있음을 언급하며 평화적 투쟁노선이 흔들리고 있다.]
관련글 보기 : 비폭력 투쟁
북아일랜드 갈등의 역사와 종교갈등
종교에 대해 어느 나라보다 관대한 한국으로서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종교에 대한 세계인들의 첨예한 갈등과 대립구도는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12C이후, 영국의 식민지가 된 북아일랜드는 전략적으로 잉글랜드계와 스코틀랜드계 신교도의 이민(얼스터 이민)이 이뤄어졌고, 토착 켈트계 카톨릭 세력과의 충돌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전략적인 얼스터 이민으로 북아일랜드 지역의 종교비는 프로테스탄트계가 다수가 되었으나, 뿌리 깊은 켈트계 카톨릭의 반발은 이 지역의 불안 요소로 남았다.
결국 영국령으로 남길 바라는 프로테스탄트계와 자치독립을 원하는 카톨릭계가 충돌하였고 1919년 조직된 IRA를 통해 한층 조직적으로 활동한 결과, '아일랜드 자유국'(영국령 자치국. 국제연맹에 가입되기도 했으며 후에 국명을 '에이레'를 거쳐 '아일랜드 공화국'으로 개명)이 성립된다.
이후 피의 화요일(1972), 엘리자베스 2세의 사촌 마운트배튼 경 피살(1979) 등 갈등의 유난히 심각했던 갈등의 7~80년대를 거쳐, 1994년 비밀협상을 통해서 IRA와 영국이 정전에 합의함과 동시에 IRA계 신페인당과의 대화도 시작하여 1998년 Good-Friday 협정을 이끌어 내어 신구교 연합자치정부가 출범하면서 평화의 기운이 팽배해지는 듯 했다.
하지만, 2003년 IRA에 프로테스탄트 지도자를 향한 테러 정보 수집 사실이 밝혀지면서 연합자치정부는 붕괴되었고, 갈등이 지속되었으나, 2005년 7월 28일자(영국 시간)로 IRA지도부가 무장해제를 선언함으로서 다시 한 번 평화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 현재 북아일랜드는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영국 하원에도 10여석의 의석을 확보하고 있다.
IRA 무장 해제의 배경
이미 3차례나 IRA에 의해 선언되었다가 IRA 스스로에 의해 무너진 바 있는 IRA무장투쟁 포기선언의 배경에는 더이상 테러 행위에 우호적이지 않은 국제 사회의 분위기를 들 수 있다.
이슬람 원리주의자 오사마 빈 라덴의 사조직 '알 카에다'에 의해 자행된 9.11테러 이후 거의 모든 분야에서 국제 사회 패러다임이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9.11테러를 계기로 일부 약자의 테러리즘에 대해 유화적인 시선을 보내던 세력들이 대거 강경한 반대 입장으로 돌아섬으로서 정규군이 아닌, 소규모 테러조직(IRA의 조직규모는 1000명 정도로 추정된다.)에 의해서 운영될 수 밖에 없는 IRA로서는 상당한 운신의 제약을 겪어 왔을 것이라 여겨진다.
이 과정에서 9.11테러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미국의 IRA 지지 세력의 정향 선회와 IRA의 도덕성에 결정타를 날린 벨파스트 은행 강도사건(IRA측에서 밝힌 목적은 은퇴하는 조직원의 퇴직금 마련을 위해서 였다고 한다.)과 IRA 조직원이 올해 술집에서 시비 끝에 저지른 카톨릭계 청년 살인사건 등은 IRA를 지지하는 국내외 대중들의 지지 기반 자체를 흔들었고, IRA의 기반이 되는 대중적 지지를 상실하게 됨으로서 IRA 활동이 가지는 대의와 현실적 지지 기반을 상실했다는 지도부의 정황 판단이 무력적 항복과 다름 없는 '무장해제'라는 최후의 카드를 선택하게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IRA조직원의 살인 사건과 관련해서 야기된 미국의 신페인당 지지 철회는 국제적 요인 중 가장 결정적이다. 여기에 최근 2차례의 런던 폭탄 테러는 테러 행위에 기반한 무장 투쟁을 하는 IRA의 존립 자체를 뒤흔들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의 건물에 그려진 호전적 내용의 벽화. 폭력 투쟁은 그들의 주된 정치 행위의 수단이었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약자의 폭력은 강자의 더 강한 폭력을 야기할 뿐이다. 그들의 나약한 폭력은 그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이들에게 무엇을 안겨다 주었는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2004년 토니 블레어 총리와 버티 어헌 아이랜드 총리의 노력을 통해 평화 협정이 체결될 뻔 했으나, 무장해제 과정을 사진으로 남겨야 한다는 프로테스탄트계의 요구에 IRA가 반발하여 무산된 바 있는 '검증가능한 무장 해제'에 IRA측이 전격 동의하면서 비밀무기고 소각 등의 과정을 프로테스탄트 쪽의 참관을 허용한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제시하므로서 여느 때의 IRA 무장해제 약속과는 다른 무언가를 기대하게 한다. 그리고 여기에 호응한 토니 블레어 총리가 '나의 아버지의 이름으로(In the Name of the Father)'라는 영화의 소재로도 유명한 살인테러범 'Shawn Kelly'를 가석방하면서 본격적인 화해의 제스쳐를 보내고 있는 현상황이 대단히 주목된다.
수 차례 약속을 어긴 IRA와 뿌리 깊은 영국의 불신과 평화 정착의 가능성
IRA에 대한 영국 프로테스탄트계 정치인들의 불신은 그 뿌리가 매우 깊다. IRA는 이미 1994년 최초로 정전을 약속하였으나, 1998년 IRA내부 급진파의 반발로 28명이 사망하는 테러행위를 자행하여 스스로 약속을 어겼으며 2001년에도 무장해제를 선언했으나, 지켜지지 않았으며 2002년 10월 테러준비 활동이 발각되면서 북아일랜드 자치정부를 스스로 붕괴시켰고, 2004년 11월 신페인당의 무장투쟁 종식 선언 또한 계속 지켜지지 않았다.
[불신으로 가득한 민주연합당(Democratic Unionist Party)의 카툰 갤러리의 한 장. 뿌리 깊은 불신과 분노는 북아일랜드의 참된 평화의 정착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 정도면 거의 북조선의 김정일 왕조의 김 국방위원장 동지 수준인데, 이러한 부정적인 선례와 약속을 밥먹듯이 어겨온 IRA에 대한 영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 프로테스탄트계의 시선은 얼음처럼 차갑기만 하다. 민주연합당(Democratic Unionist Party)의 당수 그레고리 캠벨은 올해 겨울이 끝날 때까지 IRA의 행동을 예의 주시할 것이라며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그것은 위의 국내외적인 압력에 IRA가 견디지 못한 것도 있지만, IRA가 무장 투쟁 대신에 천명한 '정치적 투쟁'이 결코 불가능하지만은 않은 환경적 요건이 북아일랜드 카톨릭계 집단에게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먼저 북아일랜드 의회에서 신페인당이 7석을 확보함으로서 제2 정당이 되어 정치적 수단을 통한 그들의 목적 달성이 결코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러한 평화적 수단으로의 전환만이 現국제질서 속에서 다시금 그들의 강력한 후원 세력이었던 미국의 지원과 국제사회의 지지를을 얻어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는 점이 그들에게 일석이조의 효과를 가져다 줄 수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영국 사회의 이러한 불신은 그 누구도 아닌 IRA와 신페인당 그들 자신들의 과거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반드시 한 번은 그들이 감내해야 할 것들이다.
물론, IRA 내부에서도 급진 성향의 지도층은 무장투쟁 포기선언 철회를 요구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이들이 분리하여 평화노선에 장애가 되는 활동을 할 수 있음을 예견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대세가 무장투쟁 포기로 기울어 버린 現시점과 무장투쟁 포기에 따르는 실익이 경우에 따라서 더 클 수도 있는 현재의 국제 환경이 IRA와 신페인당 그리고 영국의 평화공존의 길이 결코 꿈이 아닌 현실이 될 수 있음을 기대케 한다.
오늘 새벽에 일어나서 계속 글을 조금씩 써나갔는데, 아무리 봐도 내 글 같지가 않다. 막연히 사건의 전개를 알고 있는 것과 그것을 글로 꼼꼼하게 표현하는 것에서 약간의 괴리감이 다가왔고, 생각보다 내가 모르는 점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내 글이지만,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은 글.
이성은 비관하되, 의지는 낙관하라..
Melancholic Genesis™, Against All Odds..
IRA의 무장 해제 선언은 IRA의 해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IRA의 행위가 사빠띠스따 해방군과 유사한 경우처럼 무장 투쟁에서 정치 투쟁으로 변화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사빠띠스따 해방군은 최근 멕시코 정부의 마약밀거래 혐의에 대해서 도덕성에 흠집을 내려는 모략이라며 반발하며 무장 투쟁을 할 수도 있음을 언급하며 평화적 투쟁노선이 흔들리고 있다.]
관련글 보기 : 비폭력 투쟁
북아일랜드 갈등의 역사와 종교갈등
종교에 대해 어느 나라보다 관대한 한국으로서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종교에 대한 세계인들의 첨예한 갈등과 대립구도는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12C이후, 영국의 식민지가 된 북아일랜드는 전략적으로 잉글랜드계와 스코틀랜드계 신교도의 이민(얼스터 이민)이 이뤄어졌고, 토착 켈트계 카톨릭 세력과의 충돌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전략적인 얼스터 이민으로 북아일랜드 지역의 종교비는 프로테스탄트계가 다수가 되었으나, 뿌리 깊은 켈트계 카톨릭의 반발은 이 지역의 불안 요소로 남았다.
결국 영국령으로 남길 바라는 프로테스탄트계와 자치독립을 원하는 카톨릭계가 충돌하였고 1919년 조직된 IRA를 통해 한층 조직적으로 활동한 결과, '아일랜드 자유국'(영국령 자치국. 국제연맹에 가입되기도 했으며 후에 국명을 '에이레'를 거쳐 '아일랜드 공화국'으로 개명)이 성립된다.
이후 피의 화요일(1972), 엘리자베스 2세의 사촌 마운트배튼 경 피살(1979) 등 갈등의 유난히 심각했던 갈등의 7~80년대를 거쳐, 1994년 비밀협상을 통해서 IRA와 영국이 정전에 합의함과 동시에 IRA계 신페인당과의 대화도 시작하여 1998년 Good-Friday 협정을 이끌어 내어 신구교 연합자치정부가 출범하면서 평화의 기운이 팽배해지는 듯 했다.
하지만, 2003년 IRA에 프로테스탄트 지도자를 향한 테러 정보 수집 사실이 밝혀지면서 연합자치정부는 붕괴되었고, 갈등이 지속되었으나, 2005년 7월 28일자(영국 시간)로 IRA지도부가 무장해제를 선언함으로서 다시 한 번 평화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 현재 북아일랜드는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영국 하원에도 10여석의 의석을 확보하고 있다.
IRA 무장 해제의 배경
이미 3차례나 IRA에 의해 선언되었다가 IRA 스스로에 의해 무너진 바 있는 IRA무장투쟁 포기선언의 배경에는 더이상 테러 행위에 우호적이지 않은 국제 사회의 분위기를 들 수 있다.
이슬람 원리주의자 오사마 빈 라덴의 사조직 '알 카에다'에 의해 자행된 9.11테러 이후 거의 모든 분야에서 국제 사회 패러다임이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9.11테러를 계기로 일부 약자의 테러리즘에 대해 유화적인 시선을 보내던 세력들이 대거 강경한 반대 입장으로 돌아섬으로서 정규군이 아닌, 소규모 테러조직(IRA의 조직규모는 1000명 정도로 추정된다.)에 의해서 운영될 수 밖에 없는 IRA로서는 상당한 운신의 제약을 겪어 왔을 것이라 여겨진다.
이 과정에서 9.11테러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미국의 IRA 지지 세력의 정향 선회와 IRA의 도덕성에 결정타를 날린 벨파스트 은행 강도사건(IRA측에서 밝힌 목적은 은퇴하는 조직원의 퇴직금 마련을 위해서 였다고 한다.)과 IRA 조직원이 올해 술집에서 시비 끝에 저지른 카톨릭계 청년 살인사건 등은 IRA를 지지하는 국내외 대중들의 지지 기반 자체를 흔들었고, IRA의 기반이 되는 대중적 지지를 상실하게 됨으로서 IRA 활동이 가지는 대의와 현실적 지지 기반을 상실했다는 지도부의 정황 판단이 무력적 항복과 다름 없는 '무장해제'라는 최후의 카드를 선택하게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IRA조직원의 살인 사건과 관련해서 야기된 미국의 신페인당 지지 철회는 국제적 요인 중 가장 결정적이다. 여기에 최근 2차례의 런던 폭탄 테러는 테러 행위에 기반한 무장 투쟁을 하는 IRA의 존립 자체를 뒤흔들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의 건물에 그려진 호전적 내용의 벽화. 폭력 투쟁은 그들의 주된 정치 행위의 수단이었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약자의 폭력은 강자의 더 강한 폭력을 야기할 뿐이다. 그들의 나약한 폭력은 그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이들에게 무엇을 안겨다 주었는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2004년 토니 블레어 총리와 버티 어헌 아이랜드 총리의 노력을 통해 평화 협정이 체결될 뻔 했으나, 무장해제 과정을 사진으로 남겨야 한다는 프로테스탄트계의 요구에 IRA가 반발하여 무산된 바 있는 '검증가능한 무장 해제'에 IRA측이 전격 동의하면서 비밀무기고 소각 등의 과정을 프로테스탄트 쪽의 참관을 허용한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제시하므로서 여느 때의 IRA 무장해제 약속과는 다른 무언가를 기대하게 한다. 그리고 여기에 호응한 토니 블레어 총리가 '나의 아버지의 이름으로(In the Name of the Father)'라는 영화의 소재로도 유명한 살인테러범 'Shawn Kelly'를 가석방하면서 본격적인 화해의 제스쳐를 보내고 있는 현상황이 대단히 주목된다.
수 차례 약속을 어긴 IRA와 뿌리 깊은 영국의 불신과 평화 정착의 가능성
IRA에 대한 영국 프로테스탄트계 정치인들의 불신은 그 뿌리가 매우 깊다. IRA는 이미 1994년 최초로 정전을 약속하였으나, 1998년 IRA내부 급진파의 반발로 28명이 사망하는 테러행위를 자행하여 스스로 약속을 어겼으며 2001년에도 무장해제를 선언했으나, 지켜지지 않았으며 2002년 10월 테러준비 활동이 발각되면서 북아일랜드 자치정부를 스스로 붕괴시켰고, 2004년 11월 신페인당의 무장투쟁 종식 선언 또한 계속 지켜지지 않았다.
[불신으로 가득한 민주연합당(Democratic Unionist Party)의 카툰 갤러리의 한 장. 뿌리 깊은 불신과 분노는 북아일랜드의 참된 평화의 정착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 정도면 거의 북조선의 김정일 왕조의 김 국방위원장 동지 수준인데, 이러한 부정적인 선례와 약속을 밥먹듯이 어겨온 IRA에 대한 영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 프로테스탄트계의 시선은 얼음처럼 차갑기만 하다. 민주연합당(Democratic Unionist Party)의 당수 그레고리 캠벨은 올해 겨울이 끝날 때까지 IRA의 행동을 예의 주시할 것이라며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그것은 위의 국내외적인 압력에 IRA가 견디지 못한 것도 있지만, IRA가 무장 투쟁 대신에 천명한 '정치적 투쟁'이 결코 불가능하지만은 않은 환경적 요건이 북아일랜드 카톨릭계 집단에게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먼저 북아일랜드 의회에서 신페인당이 7석을 확보함으로서 제2 정당이 되어 정치적 수단을 통한 그들의 목적 달성이 결코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러한 평화적 수단으로의 전환만이 現국제질서 속에서 다시금 그들의 강력한 후원 세력이었던 미국의 지원과 국제사회의 지지를을 얻어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는 점이 그들에게 일석이조의 효과를 가져다 줄 수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영국 사회의 이러한 불신은 그 누구도 아닌 IRA와 신페인당 그들 자신들의 과거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반드시 한 번은 그들이 감내해야 할 것들이다.
물론, IRA 내부에서도 급진 성향의 지도층은 무장투쟁 포기선언 철회를 요구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이들이 분리하여 평화노선에 장애가 되는 활동을 할 수 있음을 예견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대세가 무장투쟁 포기로 기울어 버린 現시점과 무장투쟁 포기에 따르는 실익이 경우에 따라서 더 클 수도 있는 현재의 국제 환경이 IRA와 신페인당 그리고 영국의 평화공존의 길이 결코 꿈이 아닌 현실이 될 수 있음을 기대케 한다.
오늘 새벽에 일어나서 계속 글을 조금씩 써나갔는데, 아무리 봐도 내 글 같지가 않다. 막연히 사건의 전개를 알고 있는 것과 그것을 글로 꼼꼼하게 표현하는 것에서 약간의 괴리감이 다가왔고, 생각보다 내가 모르는 점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내 글이지만,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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