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전쟁/내전을 치르는 국가들의 안타까움을 지적하는 이들은 '정치인들의 권력 다툼에 애꿋은 국민들만 희생되고 있다'라는 말로서 그들의 죽음과 고통이 일부 소수의 권력욕 때문에 파생되는 무고한 희생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정치인들의 '권력욕'이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고, 집단이 발생하고 국가라는 권위적 공동체가 파생된 이후부터 '정치인'이라는 집단은 합법적/비합법적으로 다수 대중들을 지배해 왔고, 그들의 필요와 민중의 요구에 의해서 그 권력을 행사했고, 이 땅의 역사를 쌓아 왔다. 정치인들의 권력욕은 인간의 탐욕스러움 즉, 시기심, 팽창욕, 소유욕 등을 대변하는 대표적 아이콘으로서 민중들의 존경의 대상보다는 미움과 증오의 대상으로서 人間史의 중요한 페이지들을 장식해온 것이 사실이다.
'권력욕'은 필연적으로 또다른 권력욕과의 충돌을 일으키게 되고, 그러한 충돌은 다양한 형태로 파생되어 나타나며 때때로, 그 중 가장 격렬한 형태의 충돌인 '전쟁'이라는 형태로 인간 세계에 표출이 된다.
전쟁은 필연적으로 유혈 사태를 초래하며 전쟁으로 인한 고통은 전쟁을 직접 수행하는 군대의 군인들, 무장 게릴라와 작전을 수행하는 지휘 계통에 소속된 엘리트 집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민간인들에게까지 그러한 전쟁의 고통이 파급된다. 전쟁은 발생 그 자체가 최대한으로 억제되어져야 하는 권력 충돌의 해결 방법이고, 전쟁을 영웅시하는 풍조 또한 사라져야 마땅하다.
하지만 인간이 존재하고, 그 인간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가 존재하며 그 국가를 운영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존재해야 하는 '정치 세력'이 있는 한, 전쟁은 결코 인간의 역사에서 지워질 수 없다. 나는 스탈린을 깊게 알지는 못하지만, 그가 주장하는 '전쟁 불가피론'이 세상을 직시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전쟁(또는 무력 충돌)은 '최소화'될 수는 있지만, 이 땅에서 완전히 없어질 수는 없다. 인간의 문명이 변화해온 것처럼, 전쟁의 모습도 변화될 수는 있겠지만,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로 남는 이상, 전쟁이 이 땅에서 사라지지는 않는다. 어쩌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들 중 하나가 전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인간은 모두가 반드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않는다. 이는 (신)현실주의에 대한 (신)자유주의의 비판과도 일치한다.
[영화 '이퀼리브리엄'에서의 '프로지움'이라는 약처럼 인간의 욕구를 억제하여 완전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일 수 있게 만드는 약이 나타난다면 가능할지도?]
'호텔 르완다'를 보면서 감독 'Terry George'는 '최대한 많은 관객들이 그들(르완다인)에게 미안한 마음을 느끼게 할 것'이라고 인터뷰를 하며 영화의 노선을 분명히 그었다. 그가 보내려는 '호텔 르완다'에서의 진정한 메시지는 2차 대전의 쉰들러리스트를 연상케 하는 호텔 매니저 '폴'의 영웅적인 인본주의/휴머니즘적인 활약도, 후투족 민병대의 80만명을 대량학살한 잔혹함에 대한 고발도, UN PKO(Peace-Keeping Operation)군의 무기력함도, 과거 유럽의 팽창주의가 만연하던 시기, 제국주의 시대 식민지였던 르완다에 식민 모국 벨기에가 심어놓은 후투족과 투치족의 민족 갈등의 골도 아니다. 테리 조지가 진정으로 보내고자 하는 메시지는 바로 서문에 언급이 된, 정치인들의 권력욕이 무고한 민간인들을 고통과 죽음의 그림자에 갇히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의 메시지는 어떤 면에서 옳고, 어떤 면에서 옳지 못하다. 옳은 면은 모두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는 측면에서 생략하고 옳지 못한 면만을 지적하자면 원천적으로 그 고통 받는 국민들은 완전히 무죄일 수 없다는데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민은 무고하고, 정치인들의 권력욕 때문에 무고하게 희생되고 있다는 것은 틀렸다. 분쟁이 있음에 있어서 무고한 자는 있을 수 없다. 전쟁과 같은 극한의 갈등에 완전한 제3자가 존재한다는 것은 무언가 역사의 톱니 바퀴에서 자신들을 '순결한 방관자'로 이전시키기 위한 좌파 성향의 정치비평가들과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적 사고를 가진 지식인들의 책임회피성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르완다 분쟁'이라는 특수한 분쟁이 가진 정치적 특징(1973년 국방장관이었던 하비아리마나 소장이 군사 쿠데타를 통해서 독재의 기틀을 만들었고, 1994년 4월 하비아리마나가 극우 후투 진영에 의해서 암살되므로서 촉발된 르완다 내전)을 무시하고서라도, 그러한 내전이 발생할 때까지 국민들은 그들의 정치적 소임을 다하였는가 하는 다소 억지스러울수도 있지만, 본질적이고도 원천적인 질문이 발생한다.
국민은 자신들의 정치 지도자를 선출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동시에 그들을 관리/감시해야 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다. 흔히들 말하는 '민주주의 평화론'과 '국민소득 5000달러 이상의 국가에서의 군사 쿠데타 불가론'는 논리는 이러한 국민의 의무가 성실히 수행될 수 있다는 가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가능한 주장이다.
그렇다면 국민소득 5000달러가 안되는 아시아-아프리카 빈국들의 내전과 군사 쿠데타, 전쟁 등에 대해서는 그러한 국민의 의무를 강요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충분히 가능한 주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테리 조지의 이러한 메시지는 어느 부분에서는 정당하고 어느 부분에서는 잘못되었다고 지적한 것이다. 전쟁/내전이 발생하도록 방조하고 그들의 대중주의(Populism)에 호도되어 선동된 채, 정치인들의 의도대로 손쉽게 움직인 후투족 민병대들(마치, 한국의 어느 집단을 떠오르게 한다.)은 분명한 전쟁의 주체 세력이며 동시에 전범들이다. 그들은 그러한 고위 정치인/군부의 정치적 야욕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反평화적인 행위를 자행한 것이다. 그러나 테리 조지는 이러한 모든 대중의 정치에 대한 감시 책임을 외면 또는 가볍게 다룬 채, 사회 지도층의 정치놀음을 집중적으로 부각(특히, 뇌물에 의해서 이념도 지조도 없이 뒤흔들리는 후투족 장성과 장교들의 모습을 집중 부각시키며 '뇌물이 떨어졌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없다'는 대사를 재차 반복하는 모습은 그러한 시도의 노골화다.)시키면서 그들에게 우회적 면죄부를 주도록 관객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사회적 인과 관계에서 사회 구성원 어느 일방에게 완전히 무죄가 인정되는 경우가 괴연 몇이나 될 것인가? 정치인들이 뇌물을 받았다면 그것이 단지 뇌물을 준 사람과 받은 사람 쌍방만의 책임이 되는 것인가? 사회의 관심과 감시의 의무에 대한 요구는 완전히 묵살되어도 합당한 것인가? 당시에는 억압적인 사회 구조 때문에 지적하기가 힘들었다고 할 것인가? 그렇다면 오늘날 대폭 개방된 사회 구조 속에서 과거의 그들에 대한 비난과 비판을 맹폭하면서 정의의 화신이 되어가는 그들은 또다른 의미에서 사회적 폭력의 행사자이며 시대의 흐름과 권력 이동에 대한 새로운 추종에 충실한 비겁자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어찌 되었거나, 전쟁은 전쟁이다. 전쟁이 불가피하다면 전쟁을 최소화, 단기화 하는 것이 바로 '최대의 평화('완전한 평화'라는 단어는 나의 사전에는 없다.)'를 만드는 길이다. 그러한 면에서 테리 조지가 또하나의 가해자로 지목한 르완다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온 벨기에, 프랑스 그 외 UN과 국제 사회는 이런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들의 아프리카 식민지 국가들에게 보상을 하는 사태(?)는 없을 것이다. 그들은 나약하고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관계 개선에 열을 올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파워게임이며 힘의 논리다.
이성은 비관하되, 의지는 낙관하라..
Melancholic Genesis™, Against All Odds..
'그의 사고 방식 > 사적 논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韓-美/日 상호 불신 (0) | 2005/08/17 |
|---|---|
| Goodbye Lenin (0) | 2005/08/17 |
| 제 3세계를 향한 일반적인 시각의 모순 (2) | 2005/08/17 |
| 아티스트(Artist)는 없다. (0) | 2005/08/17 |
| EU의 통합 (0) | 2005/08/17 |
| 호텔 르완다 : 완전히 무고한 자 (0) | 2005/08/17 |
| 영토분쟁, 그 철저한 힘의 논리 (0) | 2005/08/17 |
| 中외교관 “中, 한국 주도 통일 원치않아" (0) | 2005/08/17 |
| '과학'이란 무엇인가? (0) | 2005/08/17 |
| UN분담금 문제 (0) | 2005/08/17 |
| 어글리 코리언의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음지. (0) | 2005/08/17 |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이올린에 추천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