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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걸맞는 정부를 가진다. // 사진은 클릭으로 리사이즈.
- 독도 문제의 발생
2004년 2월 24일, 駐韓일본대사 다카노 도시유키는 서울에서 '독도는 일본의 영토'라는 주재국의 주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충격적 발언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다. 이에 국내 극우 세력을 중심 여론이 촉발되어 다카노 도시유키에 대한 즉각적인 추방을 주장하기 시작하였고 이는 곧 여론의 대세가 되었다. 그러나, 다카노 도시유키는 여전히 서울에 남아 있다.

2005년 3월 16일, 일본 시마네현에서 대한민국의 실효적 지배가 미치고 있는 동해의 섬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라고 명명하며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제정하는 조례안이 정식으로 현의회를 통과하였다. 이에 거의 즉각적으로 한국 정부에서는 '新對日외교 독트린'을 발표하였고, 노무현은 대통령 차원에서 직접적으로 연일 대일 강경 발언을 퍼붓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와 자민당내 일부 온건 파벌은 한국의 자중을 요구하고 있으나, 뚜껑이 열릴대로 열려버린 한국 측에서는 그 말이 귀에 들리지 않고 있다. 외교 관례를 무시한 일본이 주장하는 외교적 발언들은 적어도 한국내에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연일 對日강경노선을 견지하고 있고, 소영웅주의에 사로잡힌 채 분기탱천한 마산시의회는 '대마도의 날' 제정이라는 다소 유치한 발상까지 하게 되었다. 駐日대사관 앞에서 전국무술인연합회라는 낯선 단체의 회장 母子는 손가락을 절단하는 시위[이런 류의 시위는 정말 어리석고 우매하게만 느껴진다. 그래서 바뀌는게 무엇인가? 자기만 손해일 뿐이다.]를 벌이며 잠시나마 큰 이슈가 되기도 하였다. 전체적으로 한국내의 反日감정은 87년 민주화 이후 최고조로 달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상응하여, 일본 내에서도 거의 관심이 없었던 동해 바다의 작은 섬 독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역사적 책임감이 결여된 채 50년을 살아온 일본인들은 한국의 反日감정에 대한 역풍으로서의 反韓감정이 그 불씨를 서서히 지피고 있다.


- 독도 문제의 역사적 전개 : 역사적 배경과 新한일어업협정
소비에트 연방 주도의 북방삼각동맹에 대한 대항의 의미로서 미국 주도의 이데올로기적 가치관이 반영된 남방삼각동맹을 위한 韓日수교가 맺어진 이후, 1965년 6월 韓日간의 어업협정이 체결되었다.

그러나 1998년, 국가 간 외교의 예의에서 있을 수 없는 국제법상 유효한 국가 간 협정의 '일방 파기'라는 무례한 외교적 수단을 내민 일본은 급작스럽게 韓日어업협정을 새로 체결할 것을 요구하였고, 한국의 어업협정 대표단의 대표는 "일본 측 대표와 동문수학하면 호형호제하던 사이이다. 모든 것이 잘 해결될 것이다"라며 호언장담하며 협상 테이블에 임하였다.

하지만 국제법 상의 무례를 각오하고 협정을 일방파기한 일본의 사전 준비는 '대표의 사적인 친분을 내세우는 감정적 준비'에 그친 한국 대표단이 감당해낼 수 있는 그러한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국가對국가의 관계에서 사적인 친분을 믿고 협상 테이블에 나선 한국측 대표의 정신적 헤이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응징의 대상이었고, 新韓日어업협정 체결 직후 한국 측 대표는 해임되었다.

일본은 이 新한일어업협정 과정에서 무엇을 얻고자 했는가에 대해서는 당시로서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다. 新韓日어업협정 과정에서 일본측이 얻은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이다. 분명한 것은 그 이전까지는 분명히 독도는 한국의 영토였고 인근 해역은 한국의 영해였고 영해에 대한 권리를 행사해 왔으며 EEZ[배타적 경제수역, Exclusive Economic Zone]의 한국측 최전방 영토로서 역할을 하던 독도와 독도의 영해의 국제법적 위치가 모호해지게 되었다. 이러한 국가 주권이 침해 받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적으로는 당시 대표였던 수산청 장관의 해임 정도로 그의 '매국 행위'[그는 어떤 의미에서 작은 '을사5적'이 아닌가?]에 대한 처벌이 끝나게 되었고, 국내 정치적으로는 독도 근해 어업 활동에 지장을 받게 된 어민들의 반발을 긴급히 무마하기 위해 폐선비를 두둑하게 지원[어선은 기능이 뚜렷하여 오징어잡이배가 명태잡이배로 바꾸거나 할 수가 없다고 한다.]하며 당시 국정 운영의 어려움을 벗어나는데 급급하였고, 국민들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거의 인식하지 못한 채 곧 新韓日어업협정을 잊어 갔다.


- 독도 문제의 역사적 전개 : 2차에 걸친 새 역사 교과서 문제
일본 극우파의 악의적 발악이라 할 수 있는 한중일 역사 왜곡과 관련된 사전이 2000년과 2004년 연이어 발생하였다. 2000년 당시에도 문제시 되었지만, 2004년 역사 교과서 문제는 '고이즈미 준이치로'라고 하는 극우 성향[일본인의 눈에 비치기로는 아마도 '애국 세력'으로 보이지 않을까? 우리 나라에도 극우 세력은 지천에 널렸고, 그들의 행동을 칭송하는 세력이 많으니..]의 총리가 국가 원수로서 활동하고 있으면서 그 어느 시기보다 미국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 그들의 목소리가 힘을 받고 있다.

이러한 역사 교과서 논쟁에 中韓 양국을 선봉으로 동남아 각국이 한마디씩 거들면서 동북아 국제 여론을 형성하였고, 만만치 않은 국외적 압력을 받은 일본 문부성은 새역사 교과서에 대한 수 차례에 걸쳐 감수를 하게 되었고 마침내 새 역사 교과서는 출간하게 되었다. 그러한 절차를 거치며 나온 새 역사 교과서는 문화일보 기자의 사견에 의하면 표지를 떼어내고 읽으면 어느 것이 새 역사 교과서인지 거의 구분하기 힘들 만큼 내용이 교묘해지고, 표현이 순화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다사다난했던 과정을 거치며 출간한 새 역사 교과서는 일본 국내에서 1% 교부에도 실패하여 실질적으로 1만부 내외의 적은 분량만 학생들에게 배포되었다.

하지만 일본 새 역사 교과서 편찬위원회는 국제 분쟁을 통해서 일본 내 관심이 한껏 고조된 시기를 이용하여 교과서로는 예외적으로 일반 판매를 개시함으로서 약 100만부에 이르는 판매고를 올림으로서 절반의 성공을 거두게 된다. 새 역사 교과서가 일본 국내적 이슈화에 성공하게된 것에는 韓中 양국이 일본 내 극우 세력과의 수싸움에서 패배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두 차례에 걸친 교과서 분쟁에서 일본 국내 여론은 전후 최초로 어떠한 외압(과거 韓美, 美日안보협력이 긴밀할 때는 일본 내 우경화 경향을 韓日관계를 고려해여 군사협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하여 미국이 내부적으로 상당히 억누르는 경향이 있었다.) 공식적인 우경화하는 경향을 드러내게 되었고, 이러한 경향은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장기 집권으로 표면화되고 있다.


- 독도 문제의 역사적 전개 : 駐韓일본대사의 도발
2005년 2월 24일, 駐日한국대사관에서 정상적인 외교관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바로 駐韓일본대사 다카노 도시유키'독도 영유권 발언'이었고, 그것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발생했음에 한국을 비롯한 외교가 전체가 큰 충격에 휩싸였다. 즉각적으로 국내 각 단체들이 규탄 성명을 발표하며 다카노 도시유키의 추방을 요구했고, 駐韓일본대사관 앞에는 연일 시위가 이어졌다. 하지만, 다카노 도시유키는 지금 이 시간에도 일본 대사관 안에서 정상적으로 집무를 수행하고 있고 일본 본국의 훈령에 따라 정상적인 외교관으로서의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駐中한국대사관에서 10년간 근무했던 김 교수님의 외교관적 마인드에 의하면 외교가의 금기 사항 중 하나가 '주재국의 영토 주권에 대한 적대적 발언의 엄금'이라고 한다. 아무리 냉각된 외교 관계를 겪고 있다하더라도 주재국의 영토 주권에 대한 적대적 발언은 있을 수 없고, 그러한 발언은 주재국 대사가 본국에 훈령을 요청할 수도 없을 뿐더러, 그런 훈령 요청 같은 것이 있을 수도 없고, 본국에서 그러한 훈령없이 주재국 대사가 자의적 의도로 '사견'을 공식석상에서 발언할 만큼 30년 가까이 일본의 외교관으로서 활동해온 다카노 도시유키가 외교 관례에 문외한일 리도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러한 모든 정황을 통해서 추리해 볼 때, 다카노 도시유키의 '독도 발언'은 명백히 일본 본국의 훈령에 의해 다카노 도시유키가 외교관으로서의 생명을 포기한 채 내뱉은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주재국의 영토 주권을 침해한 이러한 사안에 대해서는 노무현 대통령 또는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국내 외교가의 각국 대사들을 불러 모아서 駐日일본대사의 망언에 대한 대사들의 규탄 여론을 조성하고, 일본 본국에서 다카노 도시유키를 파면시키도록 유도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당시 그러한 외교적 제스쳐를 전혀 취하지 않았고, 다카노 도시유키는 지금도 여전히 駐韓일본국 특명전권대사로서의 역할을 조금의 지장도 없이 수행하고 있다. 이는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 축출된 기존의 숙련된 외교라인을 개혁이라는 용어가 전가의 보도처럼 취급되고 보수라는 용어가 폐가망신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한국에서 '보수'라는 이데올로기적 틀 속에서 집어넣어 기업에서 고령 인원을 정리해고 하듯이 그들의 수족을 잘라내고[기존 외교라인을 험지로 보내거나, 이탈시키는 방법] 제 발로 뛰쳐나가게 만들면서 그들이 가진 경험과 국제적 인맥을 잘라내고, 그 빈자리를 아직 신참내기인 자신의 사람들을 심어 놓은 결과라 여겨진다. 권력 이양 과정에서 기존의 정치권력 집단이 물러나고 신권력의 보좌진들이 요직에 오르는 것은 당연하지만, 외교 라인은 그렇게 권력에 따라 좌지우지되어서는 안된다.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또 한 번 독도에 대한 영토 주권을 행사하는 한국의 국제적인 지위는 모호해지게 되었다.


- UN문제를 둘러싼 갈등 : 상임이사국 확대와 G4의 진출 시도
[미국의 이라크 전쟁 수행 과정에서 보여준 일본의 충성심(?)은 여느 다른 국가들(폴란드, 스페인 등을 비롯한 속칭 폴란드 사단)의 그것과는 다른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당장의 명분과 민족 자존심을 버리고 강자의 꽁무니를 쫓는다는 비아냥을 감수한 댓가는 일본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적극지지와 美-日신안보공동선언이라는 그들이 오랜동안 학수고대하던 '보통국가'를 향한 그것들이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일본을 비롯한 G4국가(독일, 일본, 인도, 브라질)들은 상임이사국 입성을 시도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2004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UN총회에서 UN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을 공식적으로 희망하면서 UN 규정 개안을 위한 2/3 지지 확보를 위해 독일, 브라질, 인도 등과 연계해서 사실상의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입 시도는 단순히 일본이 안전보장이사회에 진입한다는 사실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일본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은 일본의 국내헌법의 근본부터 뒤흔드는 결과로서 국군이 없는 일본을 부정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상임이사국은 전 세계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서 자국의 무력의 국외 행사를 불사해야 하는 국제법상 중차대한 역할을 수행하는 국가로서 '보통 국가'가 아니고서는 그 역할의 정상적 수행이 불가능하다 할 수 있다.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은 2차 대전의 패전국으로서의 멍에를 벗어던짐과 동시에 합법적인 군사력 무장을 국제 사회로부터 용인 받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제국주의 시절 일본의 패권적 정복 활동에 희생되었던 근현대사를 가진 동아시아 각국에 강력한 거부감을 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한국과 일본 주변국들에게 그리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지 않은 듯하다. 코피 아난 UN사무총장은 21일 '권고(권고는 UN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강제력으로 실질적으로 안지켜지면 그만이다. 실제로 UN은 '유일패권국' 미국의 후원이 없다면 허수아비와 다름없다.)'를 통해서 "2005년 9월 UN총회에서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을 현행 15개국에서 24개국으로 확대하고 상임이사국 또한 확대하는 방안을 통과시키길 희망한다"라고 메시지를 날렸다. 이에 일본 외무성은 코피 아난이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고 판단하며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의 무드가 무르익었다고 자체 판단하며 이 권고에 적극 지지를 표명하고 나섰고, 다른 G4 각국들도 유사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한 국제적인 여론은 매우 우호적인 편이다. 여론조사기관인 글로블스캔과 미국 메릴랜드대의 `국제정책태도 프로그램(PIPA)'의 공동 여론조사작업에 의하면 2차 대전 후 전후 복구 사업과 보상 사업을 활발히 펼쳐온 독일의 경우 조사 대상 24개국 중 21개국이 찬성하였으며 특히, 독일의 주변국인 영국(79%), 프랑스(86%), 이탈리아(79%)등의 높은 찬성을 보임으로서 상임이사국 확대시 진출이 확실시 된다. 반면 일본의 경우 이와는 대조적으로 일본 주변국인 중국, 한국에서 각각 76%와 54%가 반대하였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일본이 독일 다음가는 지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나 일본 내부적으로도 상당히 고무되어 있는 듯하다. 비록, 그 자리가 비토권이 없는 허울뿐인 상임이사국이라 하여도 당장의 일본에게는 큰 수확이 있고, 장기적으로 멀지 않은 장래에 미국과의 공조를 긴밀히 하기 위해서 미국이 일본의 비토권 부여를 통해서 '일본 달래기'에 적극 나설 것임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 UN문제를 둘러싼 갈등 : 미국의 일본 공식 지원
이러한 국제 정세 속에서 한국과 중국에게는 사실상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3월 19일 날아 들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아시아 순방 차원에서 방문한 일본에서 "일본의 UN안보리 상임이사국 입성을 지지한다"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이다. 미국의 국무장관이 공식 석상에서 일본을 지지한다는 발언을 한 것은 이미 미국 내부적으로 일본을 UN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승격시키기 위한 국제외교적 복안을 완성했다고 파악할 수 있다. 미국은 한국처럼 선언적인 공언(空言)을 국제 외교 석상에서 하지 않는다.

이처럼 미국의 일본 지지가 공식화된 점에는 어떤 것들이 영향을 미쳤을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우선 기본적으로 미국의 극동지역 국제 외교의 기본 노선은 '현상유지'에 모든 촛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현상유지'라는 단어의 의미는 극동 지역의 힘의 역학 관계가 지금 현재의 이 상태 그대로, 그러니까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미국이 최강인 상태로 나머지 국가들이 아웅다웅거리는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대외 정책 내부에 깔린 보수주의 정책노선은 조지 W. 부시의 외교 정책 노선과 부시 정책의 씽크탱크(Think Tank)라고 할 수 있는 신보수주의의 본거지 A.E.I.(미국기업연구소, American Enterprise Institution)의 여러 논문들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렇다면 왜 미국은 '美日신안보공동선언'제정 등을 통해서 지역적 국제 여론의 반발을 무릅쓰고 일본의 국제적 역량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는가?
이러한 물음에 많은 국내 석학들은 '韓-美동맹의 약화'를 1순위로 지적하고 나선다. 미국의 극동 지역의 국제전략은 美-日, 韓-美 양대 군사조약을 축으로 형성된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 자주국방노선('韓-美 연례국가안보회의'를 위해 작년 방한한 도널드 럼즈펠드와의 협의 이후 이는 '협력적'자주국방으로 변경된다.)과 노무현과 국내 여론의 親中/反美的 성향, 미국 내의 신보수주의 세력 중에서도 콘돌리자 라이스, 도널드 럼즈펠드, 폴 울포비츠, 존 볼튼 등의 강성 정치인들의 득세, 9-11테러 이후 미국 내의 급격한 보수반동 경향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韓-美군사동맹은 급격히 취약해지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9-11테러 이후 긴장이 최고조에 달해 있는 미국 내 매파 정치인들의 對韓/對北정책에 대한 반발이 미행정부에 주도 세력들에게 유효하게 작용함으로서 취약해지는 韓-美동맹을 재건하기보다,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미국의 MD(Missile Defense)계획에 참여하고, 국제적 동의가 있기 전에 조기에 이라크에 무장 자위대를 파병하는 등 미국에 대한 충성심을 여러 차례 보인 일본과의 군사 동맹을 강화하고, 부분적 다원주의 차원에서 지역패권을 추구하는 국가들 중에서 가장 미국에 우호적이고 미국이 컨트롤 간으한 국가로서 일본을 선택한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 동북아 각국의 영토 분쟁
이렇게 복잡한 동북아 각국의 역학 관계에 결정적인 암초는 '영토 분쟁'이다. 韓-日간의 독도 분쟁, 中-日간의 조어도 분쟁, 러-日간의 북방 4도 분쟁, 韓-中간의 고구려, 발해사 분쟁(궁극적으로 영토분쟁이라 할 수 있다.)이 그것이다. 이러한 영토 분쟁이 해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우선 분쟁 당사국들 각자가 한국을 제외하면 국제 사회에서 상당히 강대국으로서 그 입지를 높고, 단순히 경제적 이익 차원이 아닌, 지역패권 확보의 전초전적인 경향을 띄게됨으로서 그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렵게 하고 있다.

동북아 4강 중 하나로서 이들 분쟁에 어쩌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미국은 표면적으로는 '완전한 중립'을 지향하고 있지만, 최근에 와서 내부적으로 일본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당장 독도 문제만 하더라도 며칠 전 콘돌리자 라이스의 방한 중에 노무현 대통령의 독도의 실효지배와 독도가 한국 영토임에 대한 당위성을 역설하는 시간에도 콘돌리자 라이스는 침묵과 딴청으로 일관함으로서 미국의 어지간한 대외 정책이 해방 이후 대대로 이어져 오던 한국의 입장 지지에서 한 발 물러서 있음을 직간접적으로 드러낸 사례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중국 또한 韓日간의 독도 분쟁에 대해서 공식적인 어느 한편을 지지하는 것을 꺼리고 있고, 이는 러시아 또한 마찬가지이다. 사실상 한국은 독도 문제에 있어서 완전히 고립된 상태에서 거대 강국 일본(그리고, 암묵적 지지국인 미국)에 맞서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국제적 상황은 결국 노무현 정권의 對美외교 참패와 다름 아니다. 애초에 중국은 미국의 적수가 되지 못함을 노무현 정권(또는 노무현 개인)은 판단하지 못한 것인가? 지난 유럽 순방에서 있었던 노무현의 '親中的 발언'과 '우회적인 미국에 대한 비난'은 결정적으로 미국의 심기를 건드렸던 것으로 짐작된다. 현재의 미국은 중국에 대한 견제를 최우선 외교정책 과제로 설정하고 GPR(Global Defense Posture Review)을 통해서 해외주둔 미군의 재배치, 성격 변화를 통하여 신속기동군화하여 중국-대만의 양안과 중동 등의 예상 분쟁 지역을 신속히 무력제압하는 것(현실적으로 對中용 전략이다.)을 골자로 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맹방인 한국의 배신행위(?)는 프랑스의 선례를 경험한 미국으로서는 용납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미국의 세계전략이 어디까지 진행되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 내부적으로 對美외교노선에 전향적인 변화가 없는 한, 더 이상 미국이 과거처럼 한국에게 절대적 지지를 보내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과 동북아 정세를 둘러싼 빅딜의 가능성
그렇다면 이러한 국제 정세가 독도와 어떻게 연관지어질 수 있는 것인가?
일본은 궁극적으로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로 끌고 가서 국제분쟁지역으로 공식적으로 인정 받기를 희망한다. 또한 실제로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일본은 승소할 만큼의 충분한 역사적 증거를 가지고 있다. [매우 불운하게도 국제사법재판소는 한국과 일본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보다, 가장 최근에 독도에 대한 국제법이 인정하는 영유권이 어느 국가에 있는가 만이 관심의 대상이며, 국제사법 재판소는 그 어느 법정보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곳이다.] 한국은 감정적으로 일본에 비우호적인 '아시아 국제사법 재판소'에 일말의 기대를 걸고 있는 듯 하지만, 이것 또한 상임이사국 진출 투표권을 놓고 세계 각국에 엄청난 금액의 무상원조를 약속하며 표심을 얻고 있는 일본에 맞서기에는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다. UN과 국제 사회는 '로비스트의 천국'일 뿐이다.

이러한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일부에서는 강대국들 간의 '빅딜' 성사 가능성을 제기한다. 오는 9월 UN안전보장이상회 회원국 확대를 포함한 UN개혁안에 비토권을 가지고 있는 러시아, 중국과 관계된 조어도, 북방 4개 도서에 대한 분쟁을 일본이 과감히 포기할 가능성이다. 조어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과 중국이 반국가분열법까지 제정하며 강하게 대만 독립을 반대하는 중국의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 더 이상 대만과의 관계(천쑤이벤 총리의 방일 등)를 포기하는 대신, UN총회에서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 지지와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을 지지해 주는 것으로 중국과의 분쟁을 마무리 짓고, 2차 대전의 패전으로 빼앗긴 북방 4도에 대해 원천적으로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우위에 있는 일본이 러시아에 군사적으로 중요시 여기는 북방 4도의 일부 또는 전부를 포기하는 대신,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인정과 UN안보리 상임이사국 확대안 지지를 약조 받고 일본은 최종적으로 UN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자리와 독도를 국제법적으로 확보한다는 딜의 성사 가능성이다. 그리고 이 모든 딜의 과정에서 미국이 美日신안보조약의 강화와 일본과의 유대 강화 차원에서 일본의 주장을 중국과 러시아에 적극 피력하며 협상을 종용할 가능성이다. 이러한 모든 과정에는 미국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동북아의 小國 한국의 입장은 완전히 무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그나마 가장 한국의 안보를 보장받을 수 있는 미국에 의지할 것이라는 확신 속에서 미국은 사실상 잃을 것이 없다는 상황 속에서 나오는 예상이다. [경제적으로는 일본에 잠식되어 있고, 수출 판로는 中/美 양국에 거의 의존되어 있고, 러시아에 대해서는 김영삼 정권의 어리석은 판단으로 인해 채권과 여러가지 권리조차 제대로 받아내지 못하거나, 스스로 포기했다.]

나는 처음 이 가능성을 접했을 때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 가능성이 결코 낮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또 한 번 놀랐다. 이것은 김대중 정권 말기[조지 W. 부시 신행정부가 출범한 이후]부터 '경솔한' 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지며 전개된 對美외교가 참패했음을 의미하며 그리고 이러한 정황이 가설로서 설득력을 가짐은 '對美외교 실패가 가져온 역풍'이라 할 수 있다.


- 무엇이 문제인가?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결론은 자명하다.
국제 사회는 힘을 통해서 움직인다. '힘(Power)'은 비단 군사적인 면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면, 기타 복합적인 역학관계를 총괄한다. 노무현 정부는 여론의 지지를 등에 업고서 그 역학관계에 순응하려 들지 않았고, '자주국방', '자주외교'라는 국내정치용 선전문구를 국외에 그대로 적용하는 愚를 범하고 말았다.

자주국방, 자주외교는 듣기엔 참으로 좋은 말이다. 하지만, 우리보다 훨씬 강한 일본이 왜 자주 국방을 하지 않고, 미국과 함께 MD계획[MD계획은 우회적으로 미국 또한 자주 국방에 자신이 없음을 의미한다.]에 뛰어들고, 누가봐도 미국의 엉덩이를 핥고 있다는 인상이 진하게 베어나는 외교 정책과 노선을 펼치는가? 그것은 자주국방, 자주외교가 주는 달콤한 유혹보다, 현실이 가진 냉엄한 공포가 더 두렵기 때문이다. 강력한 경제력과 가능성을 무기로 100여년 만에 다시 한 번 지역 패권국으로서 그 입지를 다지려 하는 중국과 BRICs의 하나로서 10년내 국민소득 2배를 꿈꾸는 한때 양대 패권국이라는 영광을 꿈꾸는 러시아 사이에서 미국의 후원이 없이는 일본에게 승산이 없다는 현실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 우리는 주변 어느 국가보다 작고 왜소하며 나약하다. 우리가 죽을 때까지 노력해도 전략급 핵을 실은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 Inter-Continental Balistic Missile] 1방이면 사실상 국토 전체가 전멸을 한다. 자주국방이란 처음부터 불가능에 가까운 꿈이었고, 우리 현실에 지나친 부담이 가중되는 계획이었다. 결국 일본조차 등질 수 없었던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외면하려한 댓가가 이러한 가설의 전개가 허무맹랑하지만은 않은 논리가 될 수 있다는 현실로서 다가왔다.

무엇이 문제인가? 글을 쓰는 나도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것은 공든 탑은 쉽게 무너지지 않지만, 한 번 무너지면 다시 그만큼 공을 들여야 한다는 명명백백한 사실이고, 더욱 심각한 것은 그 공든 탑이 지금 무너져 있다는 것이다.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우리 주제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성은 비관하되, 의지는 낙관하라..
Melancholic Genesis™, Against All Od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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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얼음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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