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교수에게서 과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어처구니 없기도 했지만, 갑자기 궁금해졌다. 한 번도 제대로 그것에 대한 물음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블로그 글 쓰듯이 써서 학교에서 발표(?)를 했다.
'과학'이란 무엇인가?
다소 뜬금 없는 질문일 수 있겠지만, '과학'에 대해 설명해 보라고 한다면 당황스러움을 느끼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나를 비롯한 일반인들에게 과학은 '과학'이라는 단어 그 자체로서 꾸준히 존재해 왔고, 과학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조금도 물음표를 달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태에서 '과학이란 무엇인가?'라는 과제로 인해 나는 과학이 무엇이고, 오늘날 과학이 이룩한 것과 과학이 당면한 과제는 무엇인가를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쉽지는 않다.)
먼저 '과학'에 대해 사전적 의미를 찾아 보면 과학은 '자연 세계에서 보편적 진리'라고 해석한다. '자연 세계에서 보편적 진리'라는 사전적 의미처럼 우리는 누구도 '과학'이 가지는 보편적 진리, 즉 '절대적 권위'에 대해 감히 거역하지도, 의문 부호를 달아 보기도 힘들었다는 것을 발견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과학은 사전적 의미처럼 대중들에게 보편적으로 널리 지지 받는 이론이었고, 과학에 근거를 둔 이론과 학설들은 언제나 대중에게 지지를 받았고, '보편적 논리'로써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과학적'이라는 말은 '신성불가침'과 은연중에 동의어가 되어 있었다.
과학에는 인문/사회 과학에서의 과학과 실용/자연 과학에서의 과학 등이 있다. 인문/사회에서 과학이라 함은 어떠한 사회 현상이나, 사고를 정해진 답은 없으나, 다양한 법칙을 통해서 그것을 설명하고자 함에 목적을 두고 있고, 실용/자연 과학에서의 과학은 어떠한 물리적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공식을 만들고자 함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이러한 시도와 노력을 통해서 과학은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자연 세계에서 보편타당한 진리를 확보하고, 대중의 동의를 받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하겠다.
실제로 과학은 그것이 가지는 이성적인 면을 극적으로 활용하며 대중과 저마다 다양한 학문을 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깊은 신뢰와 믿음을 쌓아갔다. 모든 의문에 대한 답과 가설은 과학적인 논리와 설명이 필요하게 되었고, '과학적이지 않은 것'은 '어리석은 것/미개한 것'으로 치부되는 것이 당연시되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게 된 것이다. 이처럼 과학은 우리 사회(자연 세계)에서 보편타당한 진리로서 그 확고부동한 믿음을 굳건히 해왔다.
이처럼 학계와 현실 세계에서 높은 권위를 가지고 있던 '과학이라고 하는 종교'에게 최근 도덕성 논란이 이슈화 되기 시작하였다. 그 중 하나가 '복제양 돌리'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촉발된 '과학의 비윤리성'이다. 과학이 가지는 절대적 권위를 극대화했다고 볼 수 있는 생명 복제는 기존 사회에서 과학이 가졌던 '생명 연장'의 영역을 넘어서 '생명 창조'라고 하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 권리를 요구하게 되었고, 이에 생명 창조의 영역을 '신의 영역'으로 여기는 종교계와 과학의 무한에 가까운 영향력을 두려워한 일부 대중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과학의 비윤리성이 제기되게 되었다.
이러한 과학의 비윤리성이 제기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성이 죄악시 되던 신정(神政)시대(중세유럽의 시대)를 넘어 르네상스와 산업화를 거치면서 인간은 과학이 가져다 주는 이성적 사고의 혜택을 누려왔다. 그러나, 인간을 편리하고 윤택하게 하고자 했던 과학의 발달이 고도화 되면서 오히려 인간 소외와 비인간적인 모습을 발현하기 시작하었고, 그러한 과학의 비윤리성에 대한 적대 의식의 일환으로 '러다이트 운동 (Luddite Movement)'과 같은 과학의 발전에 반하는 운동이 일어나는 등 과학은 절대적 권위가 위협받음과 동시에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되는 과학의 윤리성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는, 결국 그 관점의 무게 중심을 어디로 두는가에 따라 결론의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과학이 보여준 가능성과 그로 인한 생명 연장, 심지어 생명의 (재)창조를 통해서 인간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겪게 될지도 모를 고난을 최소화할 수만 있다면 어느 정도의 도덕률의 희생을 감수할 수 있다고 한다면 과학의 비윤리적인 측면은 묵인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과학이 가져다 주는 문명의 축복보다, 인간성 회복에 더 큰 주안점을 둔다면 과학의 비윤리성과 무차별성에, 과학의 발전을 경계하고 불신하게 만들게 되고 과학의 발전에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문제의 동인(動因)은 명확하다. 하지만, 그 문제의 동인을 해결하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양립할 수 없는 두 관점이 가지는 극단적이고 타협할 수 없는 이상의 거리 속에서 '과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자신의 정체성 확립과 과학이 가지는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성은 비관하되, 의지는 낙관하라..
Melancholic Genesis™, Against All Odds..
그래서 블로그 글 쓰듯이 써서 학교에서 발표(?)를 했다.
'과학'이란 무엇인가?
다소 뜬금 없는 질문일 수 있겠지만, '과학'에 대해 설명해 보라고 한다면 당황스러움을 느끼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나를 비롯한 일반인들에게 과학은 '과학'이라는 단어 그 자체로서 꾸준히 존재해 왔고, 과학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조금도 물음표를 달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태에서 '과학이란 무엇인가?'라는 과제로 인해 나는 과학이 무엇이고, 오늘날 과학이 이룩한 것과 과학이 당면한 과제는 무엇인가를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쉽지는 않다.)
먼저 '과학'에 대해 사전적 의미를 찾아 보면 과학은 '자연 세계에서 보편적 진리'라고 해석한다. '자연 세계에서 보편적 진리'라는 사전적 의미처럼 우리는 누구도 '과학'이 가지는 보편적 진리, 즉 '절대적 권위'에 대해 감히 거역하지도, 의문 부호를 달아 보기도 힘들었다는 것을 발견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과학은 사전적 의미처럼 대중들에게 보편적으로 널리 지지 받는 이론이었고, 과학에 근거를 둔 이론과 학설들은 언제나 대중에게 지지를 받았고, '보편적 논리'로써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과학적'이라는 말은 '신성불가침'과 은연중에 동의어가 되어 있었다.
과학에는 인문/사회 과학에서의 과학과 실용/자연 과학에서의 과학 등이 있다. 인문/사회에서 과학이라 함은 어떠한 사회 현상이나, 사고를 정해진 답은 없으나, 다양한 법칙을 통해서 그것을 설명하고자 함에 목적을 두고 있고, 실용/자연 과학에서의 과학은 어떠한 물리적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공식을 만들고자 함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이러한 시도와 노력을 통해서 과학은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자연 세계에서 보편타당한 진리를 확보하고, 대중의 동의를 받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하겠다.
실제로 과학은 그것이 가지는 이성적인 면을 극적으로 활용하며 대중과 저마다 다양한 학문을 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깊은 신뢰와 믿음을 쌓아갔다. 모든 의문에 대한 답과 가설은 과학적인 논리와 설명이 필요하게 되었고, '과학적이지 않은 것'은 '어리석은 것/미개한 것'으로 치부되는 것이 당연시되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게 된 것이다. 이처럼 과학은 우리 사회(자연 세계)에서 보편타당한 진리로서 그 확고부동한 믿음을 굳건히 해왔다.
이처럼 학계와 현실 세계에서 높은 권위를 가지고 있던 '과학이라고 하는 종교'에게 최근 도덕성 논란이 이슈화 되기 시작하였다. 그 중 하나가 '복제양 돌리'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촉발된 '과학의 비윤리성'이다. 과학이 가지는 절대적 권위를 극대화했다고 볼 수 있는 생명 복제는 기존 사회에서 과학이 가졌던 '생명 연장'의 영역을 넘어서 '생명 창조'라고 하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 권리를 요구하게 되었고, 이에 생명 창조의 영역을 '신의 영역'으로 여기는 종교계와 과학의 무한에 가까운 영향력을 두려워한 일부 대중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과학의 비윤리성이 제기되게 되었다.
이러한 과학의 비윤리성이 제기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성이 죄악시 되던 신정(神政)시대(중세유럽의 시대)를 넘어 르네상스와 산업화를 거치면서 인간은 과학이 가져다 주는 이성적 사고의 혜택을 누려왔다. 그러나, 인간을 편리하고 윤택하게 하고자 했던 과학의 발달이 고도화 되면서 오히려 인간 소외와 비인간적인 모습을 발현하기 시작하었고, 그러한 과학의 비윤리성에 대한 적대 의식의 일환으로 '러다이트 운동 (Luddite Movement)'과 같은 과학의 발전에 반하는 운동이 일어나는 등 과학은 절대적 권위가 위협받음과 동시에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되는 과학의 윤리성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는, 결국 그 관점의 무게 중심을 어디로 두는가에 따라 결론의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과학이 보여준 가능성과 그로 인한 생명 연장, 심지어 생명의 (재)창조를 통해서 인간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겪게 될지도 모를 고난을 최소화할 수만 있다면 어느 정도의 도덕률의 희생을 감수할 수 있다고 한다면 과학의 비윤리적인 측면은 묵인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과학이 가져다 주는 문명의 축복보다, 인간성 회복에 더 큰 주안점을 둔다면 과학의 비윤리성과 무차별성에, 과학의 발전을 경계하고 불신하게 만들게 되고 과학의 발전에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문제의 동인(動因)은 명확하다. 하지만, 그 문제의 동인을 해결하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양립할 수 없는 두 관점이 가지는 극단적이고 타협할 수 없는 이상의 거리 속에서 '과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자신의 정체성 확립과 과학이 가지는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성은 비관하되, 의지는 낙관하라..
Melancholic Genesis™, Against All Od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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