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진보신문이라고 자칭하는 한 신문사의 컬럼 전문 페이지는 나의 애장품(?)이다. 왜냐하면 그 컬럼 페이지의 많은 글들은 상당히 유용한 정보를 지녔으며 깊은 이해를 갖추지 못한 제3세계 지역에 대한 정보를 많이 담고 있기 때문이다.
(좌파 계열의 언론의 특징은 제3세계 빈곤층을 심층 보도하길 즐긴다는데 있다. 제3세계의 빈곤은 제1세계의 착취와도 직결되고, 자본주의 산업 구조의 신자유주의적 사조에 태클을 걸 수 있는 '전가의 보도'이다.)
국제 사회에서 제3세계가 가지는 의미란 너무나 미미하고 피동적이고, 객체지향적일 수 밖에 없다. 당연히 깊은 연구를 필요로 하는 국가나 지역이 제한될 수 밖에 없고, 제3세계의 소수 주류를 벗어난 제3세계의 제3세계는 그저 그런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정보만 알아도 충분할 만큼 '국제 사회'(나는 언제부턴가 이 국제 사회라는 용어의 범위를 제1세계와 산업화에 성공한 제3세계 일부로 한정하고자 하려는 내 안의 시도가 생기기 시작했다.)라는 측면에서 그 '존재의 가벼움'이란 참을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이러한 피상적인 시각은 그러한 정도의 '3류 국가'에 제한되는 것이지, 그러한 수준의 시각으로 제도권의 주류에 진입해 있는 국가를 바라 보는 것은 매우 불합리할 수 밖에 없고 심할 경우, 자기 목에 칼을 들이대는 꼴이 아니라 할 수 없다.
나는 오늘 한 (자칭)진보계 신문사의 컬럼 페이지에서 모 야권 정당의 정치를 모르고 보좌관도 쓸 줄 모르는 무지몽매한 늙은 공주의 아버지에 대해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사례만을 제시하며 그의 권력독점욕이 넘치는 정치적 야욕과 이상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용서될 수 없는 민중의 희생을 강요한 측면에 대해서 피상적인 몇가지 예시만을 들며 신군부 정권 붕괴 이후 수도 없이 진행되어 오는 '우리의 과거사 부정 작업'의 한 단면을 보았다.
나는 '고경태'라고 하는 그 신문사의 신문 기자가 가련해지기 시작했다.
'개발 독재'로 대변되는 그 시대를 살아왔을 그가 한국에서 계속 성장했는지는 의문이지만, 그가 제시해 놓은 것들은 그가 피력하려고 하는 사고에 유리한 것만 선별해서 모아 놓은 어린애의 입맛을 맞춰주기 위한 '편식'에 불과하다.
그는 당시 한국의 상황을 깡그리 부정했다.
국민 소득 100달러가 채 되지 않았던, 사회간접자본이라고는 눈 씻고 보아도 찾아볼 수 없고, 국가 예산의 70~100%를 충당하던 미국의 무상원조는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여 베트남전 참전 직전에는 1억 1천만 달러 수준으로까지 떨어졌고, 소련-중국-북한의 북방 삼각 동맹에 대항하기 위해 미국 주도로 성급하게 진행될 수 밖에 없었던 남방 삼각 동맹을 위한 한일 수교 과정에서 일본으로부터 받은 무상 3억 달러, 차관 2억 달러, 민간 차관 1억 달러는 현금이 아닌 산업 자재로 받을 수 밖에 없었던 탓에 일본에 대한 경제 종속은 심화(눈에 빤히 보이는 진행 과정임에도 그것조차도 아쉬웠던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보릿고개를 넘을 때마다 사정없이 죽어 나가던 국민들과 전국민 실업률 30%를 넘나들던 세계 최극빈국 한국의 현실을 기억하라.)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고경태 기자가 베트남전을 '박정희의 로또복권'이라고 표현한 것은 매우 적절한 묘사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은, 박정희 뿐만 아니라 한국과 한국민 전체에게 주어진 대박 가능성 100%의 다시 없는 로또 복권이었고, 그것은 눈에 빤히 보이는, 입 앞까지 스푼으로 떠먹여 주는 요플레와 같은 성공 카드였다. 무능력한 이상주의는 결코 줄 수 없는 國富를 삽으로 마구 뜰 수 있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금광과도 같은 것이었다.
베트남전 참전을 위해서 군부 정권은 최초 John F. Kennedy와의 파병 약속과 달리, 소수의 간호단과 태권도 시범단을 파견하여 구색만을 갖추며 미국의 추가적인 오퍼를 유도하였다. 미국과 박정희 군사 정권은 수차례 회담을 거친 끝에 베트남전의 군수 물자를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 공급한다는 조건(베트남전 당시 군수품 수리는 필리핀과 대만에서 이루어졌고, 이는 대만과 필리핀의 산업구조를 개선시키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과 2차 파병 당시 한국군의 임금을 거의 100%가까이 인상을 하여 미군의 70% 수준까지 올렸고(당시 한국과 미국의 소득 수준의 차이를 감안해 보라. 한국으로서는 대박도 이런 대박이 없다.), 파병을 통해서 미국의 무상 원조도 다시 2배 이상 증가하였고(일본은 최초 3억 달러를 제외하면 모두 차관 형식이었고, 그나마도 현물로 넘겼다.), 베트남전 참전을 통해서 완전히 앉아서 당할 수도 있었던 1970년대 카터의 주한 미군 철수(이는 실제로 닉슨 재임시절 계획 완료된 미군 재배치 계획으로 카터는 단순히 실행자였을 뿐이다.)를 물고 늘어져 당시 금액으로 천문학적인 15억 달러의 한국군 현대화 무상 지원금과 당시 미국 이외에는 서방 어느 나라도 보유하지 못했던 최신예 전투기 팬텀기를 다수 인도 받아 비행단을 창설하였다. [당시 일본조차도 팬텀기로 조직된 비행단이 없었다.]
- 내 주머니의 돈까지 모두 퍼주면서도 빌빌거리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과는 적어도 對美외교에 있어서 만큼은 질적으로 달랐다. 그것만은 분명히 인정해야 한다. 지금 노무현이 완전히 물갈이하고 기존의 외교 라인을 짤라버리고 교체한 외교 라인은 정말 '박공주당' 말마따나 '등신외교' 밖에 할 수 없는 무능한 집단일지도 모른다.
우리 젊은이 5000여명(전사자)이 베트남에서 흘린 피가 그토록 천추의 한이 되고, 죄가 되는가? 그들 5000여명이 희생함으로서 오늘날 4700여만명 우리 한국인이 이만큼 살게 되었다. ('규모의 경제'를 기억하라.) 그 때 그들이 베트남전에서 죽지 않았다 한들, 60년대 극빈국 한국 안에서 그 전쟁 수행기간동안 참전하지 않음으로서 더욱 감축되거나, 심지어 끊겼을 미국의 무상 원조로 굶어 죽거나, 병들어 죽었을지도 모를 또다른 우리 젊은이들의 피를 생각해 보라. 그것이 무조건 박정희 군사정권의 권력욕만으로 점철되는 악행이 될 것인가?
['전쟁'은 '전쟁'이다. 전쟁은 병정놀이도 병영체험도 아니다. 전쟁터에서 인권을 논하는 자, 자신이 부르짖는 인권의 외침 속에서 홀연히 죽어 가리라. 그리고 잊혀지리라. 어느 누구도 그를 기억하지 않은 채..]
'라이따이 한'이 그토록 죄스러운가? 베트남 민간인 학살이 그토록 죄스러운가?
전쟁의 본질이 무엇인지, 총 한 번 쏴보지 않은 자들의 낭만어린 평화론은 아닌가? 게릴라전이었던 베트남 전쟁의 본질을 파악하지 않고서 민간인 학살을 감히 입에 담아서는 안될 것이다. 게릴라는 정규군이 아니다. 게릴라는 민병대처럼 민간인 복장을 하고서 적대적 군사 행위를 하는 자들을 상대하는 전쟁이다. 그들은 손에 쥐어진 총을 놓는 순간 민간인으로 돌변한다. 왜 모두가 베트남전이 게릴라전이었다는 사실은 알면서 게릴라의 본질은 인정하려 하지 않는가..
완벽한 惡 자체로 뭉친 인간이 있을 수 없듯이 박정희 군사정권이 이룩한 순기능적인 면은 순기능적인 면 그 자체만으로 평가해 주어야 한다. 어느 하나만 잘못하면 전체를 매도하고, 잘한 것까지 매도하는 것은 한국인의 아주 더럽고 치졸한 기질이 아닌가? 또 그러한 기질에 반대하고 衆愚의 폭압에 항거하며 중도적 입장을 취하는 자를 이데올로기의 스펙트럼에서 무채색으로 분류하며 회색 분자, 기회주의자로 취급하는 그들은 너무나 더러운 한국인의 기질에 충실한 '참한국인'인가?
잘한 것은 잘한 것대로 인정하고 못한 것은 못한 것대로 비난하라. 고경태 당신은 새까맣게 어린 나보다 못한 편협하고 무지몽매하기 짝이 없는 무능한 기자이며 당신의 회사의 컬럼 페이지에 감히 커버 스토리를 쓸 자격조차 없는 가증스럽고 역겨운 전형적인 어글리 코리언이다.
당시 우리에겐 선택의 폭이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제3세계로서의 한국(많은 이들은 한국이 제1세계라 착각한다.)은 '도덕성을 지키며 앉아서 굶어 죽어갈 것인가'와 '한순간만 눈을 질끈 감고서 제 발로 걸어온 성장의 기회를 잡을 것인가' 둘 중 하나만을 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참전 이전의 한국은 아프리카의 굶주리는 여느 나라와 전혀 다를 바 없는 가난한 나라의 백성일 뿐이었다. 그러한 나라의 독재적 통치자, 아니 민주적 절차를 거친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무엇을 선택했을지는 자명하다. 정말 그가 잘못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인가, 그것을 선택한 이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빨갱이 출신의 반공의 화신이어서인가?
"3일을 굶어 보라. 못할 짓이 없다."
이것이 당시 우리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답일 것이다.
이성은 비관하되, 의지는 낙관하라..
Melancholic Genesis™, Against All Odds..
(좌파 계열의 언론의 특징은 제3세계 빈곤층을 심층 보도하길 즐긴다는데 있다. 제3세계의 빈곤은 제1세계의 착취와도 직결되고, 자본주의 산업 구조의 신자유주의적 사조에 태클을 걸 수 있는 '전가의 보도'이다.)
국제 사회에서 제3세계가 가지는 의미란 너무나 미미하고 피동적이고, 객체지향적일 수 밖에 없다. 당연히 깊은 연구를 필요로 하는 국가나 지역이 제한될 수 밖에 없고, 제3세계의 소수 주류를 벗어난 제3세계의 제3세계는 그저 그런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정보만 알아도 충분할 만큼 '국제 사회'(나는 언제부턴가 이 국제 사회라는 용어의 범위를 제1세계와 산업화에 성공한 제3세계 일부로 한정하고자 하려는 내 안의 시도가 생기기 시작했다.)라는 측면에서 그 '존재의 가벼움'이란 참을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이러한 피상적인 시각은 그러한 정도의 '3류 국가'에 제한되는 것이지, 그러한 수준의 시각으로 제도권의 주류에 진입해 있는 국가를 바라 보는 것은 매우 불합리할 수 밖에 없고 심할 경우, 자기 목에 칼을 들이대는 꼴이 아니라 할 수 없다.
나는 오늘 한 (자칭)진보계 신문사의 컬럼 페이지에서 모 야권 정당의 정치를 모르고 보좌관도 쓸 줄 모르는 무지몽매한 늙은 공주의 아버지에 대해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사례만을 제시하며 그의 권력독점욕이 넘치는 정치적 야욕과 이상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용서될 수 없는 민중의 희생을 강요한 측면에 대해서 피상적인 몇가지 예시만을 들며 신군부 정권 붕괴 이후 수도 없이 진행되어 오는 '우리의 과거사 부정 작업'의 한 단면을 보았다.
나는 '고경태'라고 하는 그 신문사의 신문 기자가 가련해지기 시작했다.
'개발 독재'로 대변되는 그 시대를 살아왔을 그가 한국에서 계속 성장했는지는 의문이지만, 그가 제시해 놓은 것들은 그가 피력하려고 하는 사고에 유리한 것만 선별해서 모아 놓은 어린애의 입맛을 맞춰주기 위한 '편식'에 불과하다.
그는 당시 한국의 상황을 깡그리 부정했다.
국민 소득 100달러가 채 되지 않았던, 사회간접자본이라고는 눈 씻고 보아도 찾아볼 수 없고, 국가 예산의 70~100%를 충당하던 미국의 무상원조는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여 베트남전 참전 직전에는 1억 1천만 달러 수준으로까지 떨어졌고, 소련-중국-북한의 북방 삼각 동맹에 대항하기 위해 미국 주도로 성급하게 진행될 수 밖에 없었던 남방 삼각 동맹을 위한 한일 수교 과정에서 일본으로부터 받은 무상 3억 달러, 차관 2억 달러, 민간 차관 1억 달러는 현금이 아닌 산업 자재로 받을 수 밖에 없었던 탓에 일본에 대한 경제 종속은 심화(눈에 빤히 보이는 진행 과정임에도 그것조차도 아쉬웠던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보릿고개를 넘을 때마다 사정없이 죽어 나가던 국민들과 전국민 실업률 30%를 넘나들던 세계 최극빈국 한국의 현실을 기억하라.)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고경태 기자가 베트남전을 '박정희의 로또복권'이라고 표현한 것은 매우 적절한 묘사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은, 박정희 뿐만 아니라 한국과 한국민 전체에게 주어진 대박 가능성 100%의 다시 없는 로또 복권이었고, 그것은 눈에 빤히 보이는, 입 앞까지 스푼으로 떠먹여 주는 요플레와 같은 성공 카드였다. 무능력한 이상주의는 결코 줄 수 없는 國富를 삽으로 마구 뜰 수 있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금광과도 같은 것이었다.
베트남전 참전을 위해서 군부 정권은 최초 John F. Kennedy와의 파병 약속과 달리, 소수의 간호단과 태권도 시범단을 파견하여 구색만을 갖추며 미국의 추가적인 오퍼를 유도하였다. 미국과 박정희 군사 정권은 수차례 회담을 거친 끝에 베트남전의 군수 물자를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 공급한다는 조건(베트남전 당시 군수품 수리는 필리핀과 대만에서 이루어졌고, 이는 대만과 필리핀의 산업구조를 개선시키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과 2차 파병 당시 한국군의 임금을 거의 100%가까이 인상을 하여 미군의 70% 수준까지 올렸고(당시 한국과 미국의 소득 수준의 차이를 감안해 보라. 한국으로서는 대박도 이런 대박이 없다.), 파병을 통해서 미국의 무상 원조도 다시 2배 이상 증가하였고(일본은 최초 3억 달러를 제외하면 모두 차관 형식이었고, 그나마도 현물로 넘겼다.), 베트남전 참전을 통해서 완전히 앉아서 당할 수도 있었던 1970년대 카터의 주한 미군 철수(이는 실제로 닉슨 재임시절 계획 완료된 미군 재배치 계획으로 카터는 단순히 실행자였을 뿐이다.)를 물고 늘어져 당시 금액으로 천문학적인 15억 달러의 한국군 현대화 무상 지원금과 당시 미국 이외에는 서방 어느 나라도 보유하지 못했던 최신예 전투기 팬텀기를 다수 인도 받아 비행단을 창설하였다. [당시 일본조차도 팬텀기로 조직된 비행단이 없었다.]
- 내 주머니의 돈까지 모두 퍼주면서도 빌빌거리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과는 적어도 對美외교에 있어서 만큼은 질적으로 달랐다. 그것만은 분명히 인정해야 한다. 지금 노무현이 완전히 물갈이하고 기존의 외교 라인을 짤라버리고 교체한 외교 라인은 정말 '박공주당' 말마따나 '등신외교' 밖에 할 수 없는 무능한 집단일지도 모른다.
우리 젊은이 5000여명(전사자)이 베트남에서 흘린 피가 그토록 천추의 한이 되고, 죄가 되는가? 그들 5000여명이 희생함으로서 오늘날 4700여만명 우리 한국인이 이만큼 살게 되었다. ('규모의 경제'를 기억하라.) 그 때 그들이 베트남전에서 죽지 않았다 한들, 60년대 극빈국 한국 안에서 그 전쟁 수행기간동안 참전하지 않음으로서 더욱 감축되거나, 심지어 끊겼을 미국의 무상 원조로 굶어 죽거나, 병들어 죽었을지도 모를 또다른 우리 젊은이들의 피를 생각해 보라. 그것이 무조건 박정희 군사정권의 권력욕만으로 점철되는 악행이 될 것인가?
['전쟁'은 '전쟁'이다. 전쟁은 병정놀이도 병영체험도 아니다. 전쟁터에서 인권을 논하는 자, 자신이 부르짖는 인권의 외침 속에서 홀연히 죽어 가리라. 그리고 잊혀지리라. 어느 누구도 그를 기억하지 않은 채..]
'라이따이 한'이 그토록 죄스러운가? 베트남 민간인 학살이 그토록 죄스러운가?
전쟁의 본질이 무엇인지, 총 한 번 쏴보지 않은 자들의 낭만어린 평화론은 아닌가? 게릴라전이었던 베트남 전쟁의 본질을 파악하지 않고서 민간인 학살을 감히 입에 담아서는 안될 것이다. 게릴라는 정규군이 아니다. 게릴라는 민병대처럼 민간인 복장을 하고서 적대적 군사 행위를 하는 자들을 상대하는 전쟁이다. 그들은 손에 쥐어진 총을 놓는 순간 민간인으로 돌변한다. 왜 모두가 베트남전이 게릴라전이었다는 사실은 알면서 게릴라의 본질은 인정하려 하지 않는가..
완벽한 惡 자체로 뭉친 인간이 있을 수 없듯이 박정희 군사정권이 이룩한 순기능적인 면은 순기능적인 면 그 자체만으로 평가해 주어야 한다. 어느 하나만 잘못하면 전체를 매도하고, 잘한 것까지 매도하는 것은 한국인의 아주 더럽고 치졸한 기질이 아닌가? 또 그러한 기질에 반대하고 衆愚의 폭압에 항거하며 중도적 입장을 취하는 자를 이데올로기의 스펙트럼에서 무채색으로 분류하며 회색 분자, 기회주의자로 취급하는 그들은 너무나 더러운 한국인의 기질에 충실한 '참한국인'인가?
잘한 것은 잘한 것대로 인정하고 못한 것은 못한 것대로 비난하라. 고경태 당신은 새까맣게 어린 나보다 못한 편협하고 무지몽매하기 짝이 없는 무능한 기자이며 당신의 회사의 컬럼 페이지에 감히 커버 스토리를 쓸 자격조차 없는 가증스럽고 역겨운 전형적인 어글리 코리언이다.
당시 우리에겐 선택의 폭이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제3세계로서의 한국(많은 이들은 한국이 제1세계라 착각한다.)은 '도덕성을 지키며 앉아서 굶어 죽어갈 것인가'와 '한순간만 눈을 질끈 감고서 제 발로 걸어온 성장의 기회를 잡을 것인가' 둘 중 하나만을 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참전 이전의 한국은 아프리카의 굶주리는 여느 나라와 전혀 다를 바 없는 가난한 나라의 백성일 뿐이었다. 그러한 나라의 독재적 통치자, 아니 민주적 절차를 거친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무엇을 선택했을지는 자명하다. 정말 그가 잘못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인가, 그것을 선택한 이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빨갱이 출신의 반공의 화신이어서인가?
"3일을 굶어 보라. 못할 짓이 없다."
이것이 당시 우리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답일 것이다.
이성은 비관하되, 의지는 낙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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